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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삼상 4:12 - 18]

leeapostle 2012. 9. 14. 08:56


4:12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두려움이라는 단어는 참 무서운 말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오직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특히나 청년에 때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참 많이 갖게 마련이다. 

나 역시 내 앞일에 대해서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걱정하고 있을 때가 많이 있다.


그런데 오늘 엘리의 모습을 통해서 그 모습이 얼마나 어리섞은지를 보게 된다.

엘리는 두 아들을 전쟁에 내보고내고 첫 전투의 패배이후 하나님의 궤까지 내어다 주었다.

그런 엘리는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들은 이후임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 아닌 궤를 두려워하는 어리섞음을 범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우둔한 제사장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야할 그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자연스레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하나님과 아무런 소통이 없으니 그 결과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하는 것은 전쟁을 걸어오는 상대도 아니고 전쟁 그 자체도 아니다.

또 하나님의 임재에 상징인 언약궤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 그분이다.


전쟁에 승리가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주님이 나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심을 가지고 그분과 온전히 소통하면서 확신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을 두려워하자... 그분은 이땅의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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